황진박 선생은 장진홍(독립장), 이내성(애국장), 김기용(애국장), 박관영(미서훈) 등과 1920년대 초 구미 선산 지역의 독립운동을 이끌다가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 이후 장진홍과 일본으로 도항하여 일본 효고현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투쟁과 구국사상을 불어넣으며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다시 동지들을 규합 의열 투쟁을 준비하던 중 밀정에 거취가 탄로나 1929년 3월 23일 동지 장진홍과 함께 체포되어 1930년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루던 중 동지 장진홍의 옥중 자결 소식을 듣고 감옥문을 파괴하고 독립 만세를 외치는 등 재소자들과 함께 농성하며 옥중 투쟁을 이어갔다.
선생은 모두 5년여의 옥고를 치루는 등 의열 투쟁을 이어갔으나 옥고의 여독으로 1942년 5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이수연 지회장은 "이날 선생의 78주기 기일을 맞이해 회원들과 산동면사무소 직원들이 함께 자리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 대한 묵념과 임시정부 애국가 제창 그리고 독립군가 제창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분향과 헌주 등으로 간단하지만 엄숙하게 진행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