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산동면의 지명은 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지어졌다는 주장이 민족문제연구소 '성명서'를 통해 제기됐다.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3.1운동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3대 항일가문인 왕산의 호를 딴 왕산광장,왕산루를, 일제의 잔재인 산동광장.산동루로 바꾸려 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산동'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성명서를 소개한다.
[성명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는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위치·관할 구역 변경 및 부·군의 명칭·위치·관할 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1913년 12월 29일 공포)에 따라 대대적인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했다.
당시 총독부는 한민족의 기상과 사기를 꺾기 위해 지명을 고쳤다.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창씨개명(創氏改名)에 앞서 '창지개명(創地改名)'이라 할 수 있는 대대적인 명칭변경을 단행한 것이다.
구미시 '산동면'도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지어진 이름이다. 산동면 지명은 원래 조선 태종 13년 몽대방(夢臺坊). 산외방(山外坊)으로 칭한 이후 500년 동안 불리다가 일제가 강제로 선산군(善山郡) 산동면(山東面)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므로 '산동'이라는 지명은 일제 식민지배의 잔재인 것이다. 일제가 지도 제작사업과 행정 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마을이나 도로, 하천, 산, 평야, 해안, 주요 시설 등의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꿔 우리 고유의 이름 3만4천 개가 사라진 것이다.
아마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산토쵸[山東町] 출신이 지명을 바꾼 것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바뀐 지명이 광복 74주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은 곳이 많다. 일본식 지명을 바꾸기 위해 나선 지자체도 있다.
경남도 창원시는 지난 6월부터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일본식 지명 정비사업'에 나섰다. 경북에서는 울진군은 서면과 원남면을 '금강송면'과 '매화면'으로, 청송군은 부동면을 '주왕산면'이전리를 '주산지리'로 바꾸기도 했다.
산동면은 3천 명 정도의 면 지역에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이제 2만3천 명이 넘어 읍 승격 자격을 갖추었다. 읍 승격 이전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지어진 산동면에서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옛 지명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일제에 의해 우리 고유의 지명이 바뀐 지 100여 년이 흘러,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3.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항일가문인 왕산 허위 선생의 호를 딴 '왕산광장'과 '왕산루'가 일제에 의해 바뀐 지명인 '산동광장·산동루'로 바뀌고, 왕산 허위와 그 집안의 독립투사 14분의 동상은 갈 곳을 잃고 1년 넘게 창고에 방치된 상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산동 '지역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산동물빛공원에서 왕산 이름을 지우라는 산동주민협의회는 왕산 가문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려 준비한 동상을 세우면 때려 부수겠다는 막말도 서슴지 않고 있으니 나라를 되찾고자 싸우다 순국한 선열들 앞에 어찌 고개를 들 수 있겠는가.
임시정부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2019년에 그러한 시대적 역사적 인식조차 외면한 산동주민협의회에 묻는다. 과연 산동주민협의회는 2만 명이 넘는 산동주민을 대표할 자격이 있는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빛나는 왕산 허위 선생을 기리는 '왕산루'와 '왕산광장'을 거부하는 지역 정서는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그들은 왕산은 산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출생지인 임은동으로 왕산 동상을 가져가라고 주장하고 있는바, 왕산과 14분의 독립투사들이 단지 임은동을 구하려고 목숨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했다고 믿는가. 참으로 개탄스러운 역사의식이 아닐 수 없다.
서울에 왕산로가 있고, 대구 달성공원에 왕산의 순국기념비가 있다. 왕산 허위 선생과 그 가문의 독립운동을 기리는 일은 대한민국 어디에서 이루어져도 박수받을 일이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구미시 외곽에 새로 개발된 아파트 밀집 지역에 왕산을 모시는 일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나라 사랑의 산교육이 될 뿐 아니라, 오히려 마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계기가 되고도 남을 일인 것이다.
2019년 9월 27일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