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경북도, 정조 때 독도에 영토비 건립 건의한 신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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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 정조 때 독도에 영토비 건립 건의한 신하가 있었다

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에서 새로운 내용 발굴
기사입력 2019.12.1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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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는 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에서 2019년 연구회 과제 수행 중에 정조 연간에 예조 정랑이었던 이복휴가 독도에 영토비를 세우자고 건의한 기사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복휴(李福休,  1729~1800) 예조 정랑(정5품의 실무관리)

 

이번에 새로이 발굴한 사료는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정조 17년(1793년) 10월 1일자 기사로, 기사에는 우산도를 울릉외도(蔚陵外島)라 칭했으며 이복휴가 우산도에 영토비를 세워 우리 땅임을 증명하자고 건의 한 것이다.

 

이복휴의 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이 예조의 등록을 살펴보니 울릉외도는 그 이름이 松島로, 바로 옛날의 우산국입니다.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나무사자로 섬사람들을 겁주어 항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만일 송도에 비를 세워 이사부의 옛 자취를 기술한다면 그 섬이 우리나라 땅 임을 증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구회 소속 유미림 박사는 이복휴가 말한 울릉외도는 오늘날의 독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먼저 여기에 보이는  우산국은『동국문헌비고』(1770)에서 울릉도와 우산도 모두 우산국 땅이라고 기록한 것을 근거로 작성한 것으로 보았다.

 

또 마쓰시마(松島)는 당시 일본인들이 우산도를 부르는 호칭이었으며, 울릉외도가 바로 松島라고 했으므로 울릉외도=松島=우산도라는  공식이 성립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정조는 영토비 건립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수토제가 정착되어 울릉도 및 속도에 대한 영유권이 확립되어 있었다고 인식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한편, 경상북도 독도사료연구회는 지난 2010년에 발족하여 2018년까지 9년간 일본사료 21편을 번역 출판했고, 금년부터 국내사료 번역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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