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을 느끼거나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에게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행위를 길티플레저(Guilty Pleasure)라고 한다.
그와 비교되는 개념인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는 단어 그대로 ‘건강한 즐거움’이지만 ‘즐거운 건강습관’에 가까운 신조어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식 건강관리는 사양하겠다는 뜻이다. 건강과 재미,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 습관은 어떻게 가능할까?
◆ 다이어트의 핵심, 지속가능성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방법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다이어트 중 지속해서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론적으로는 인풋(Input, 음식 섭취)을 줄이고 아웃풋(Output, 운동량)을 늘리는 것이 대원칙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탄수화물을 극도로 줄이는 저탄고지, 공복 시간을 늘리는 간헐적 단식, 포도, 견과류, 두부 등 특정 식품을 주 칼로리원으로 사용하는 원푸드 다이어트 등 수많은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 중에는 건강 유지보다는 오직 살을 빼는 데만 목적을 둔 것도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원푸드 다이어트가 대표적인 예다. 한 가지 음식으로만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를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살은 빠질 수 있지만, 영양 불균형이 문제다.
한 가지 음식으로는 인체가 필요로 하는 필수 영양분들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포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며칠 안에 금방 질려버릴 것이 뻔하기에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황제 다이어트, 애트킨스 다이어트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여전히 유명세를 타는 저탄고지 다이어트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지속가능성이다. 탄수화물을 극도로 줄이고 고단백+고지방 식품을 주로 섭취하면 지방축적에 관여하는 인슐린 대사가 개선되면서 살이 빠진다.
하지만 뇌의 주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극도로 예민하고 우울한 상태가 된다. 저탄고지를 실천하는 분 중 밤늦은 시간대에 TV에 나오는 라면 광고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혈당을 빨리 올리는 흰쌀밥, 부드럽고 촉촉한 빵, 달콤한 간식들을 먹으면 즉시 행복감을 경험하는 것은 뇌가 단순 포도당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결국, 단기간 체중 감량에 성공했더라도 다시 탄수화물 섭취가 늘어나면 요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간헐적 단식은 보통 2가지로 나뉜다. 일주일에 이틀을 500k㎈ 이하로 줄이는 5:2 방식과 하루 16시간 공복을 유지하는 16:8 방식이다.
평소에 아침을 잘 안 먹거나 못 먹는 분이라면 16:8 간헐적 단식이 지속가능한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다이어트에 방해가 되는 달콤한 과일이나 과자, 초콜릿 등 간식은 식후가 아닌 식전에 섭취하고, 체중감량의 단기 목표를 달성했을 때 자신에게 주는 상으로 활용하면 좋다.
◆ 다이어트 약제의 선택은?
살 빼는 약에 대해 알아보자. 의학적 상식이 없으면 특정 식품이나 약초를 먹으면 허리둘레를 늘리는 주범인 지방이 스르륵 녹아내릴 것으로 착각하지만, 세상에 그런 성분은 없다.
다이어트약은 대부분 식욕을 억제하는 성분과 섭취한 음식의 흡수를 방해하는 성분, 두 가지가 전부다. 남는 칼로리가 지방이 되므로 음식을 입안으로 덜 들어가게 하거나, 이미 음식을 섭취했다면 위장관에서 체내로 흡수되지 못하게 방해해서 인풋(Input)을 줄여주려는 전략이다.
음식 먹는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흡수저하제가 헬시플레저에 맞는다고 볼 수 있겠으나, 하루 한 번 복용하는 식욕억제제에 비해서 끼니때마다 복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삼겹살이라도 잔뜩 먹고 복용했을 때는 변기에 둥둥 뜬 기름을 보고 놀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운동의 이유, 패러다임 바꾸기
헬스클럽의 VVIP 고객은 1년 회원권을 결제하고 딱 하루 운동 후 포기한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건강을 위한 운동 역시 지속가능성이 관건이란 얘기다. 운동을 시작하여 몸에 배고 습관화되려면 100일(3개월)의 벽을 넘어야 한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100일간 동굴 속에서 마늘만 먹고 버텨야 했던 단군신화를 떠올리면 좌절감이 앞선다. 식단 조절과 운동을 병행하면 다이어트 효과는 좋겠지만, 자칫 심적 부담이 커지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
헬시플레저라는 관점에서 보면 운동이 습관화될 때까지는 식단 조절을 잠시 미루는 전략이 좋다. 패러다임을 바꾸어, 그날의 운동량을 달성했을 때 상으로 맛난 음식을 선물로 허락하는 것이다. 살 빼려고 인내하고 버티는 운동은 생각만 해도 괴롭지만,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위한 운동은 훨씬 즐겁고 신나는 운동의 종류는 상관없다.
단위 시간당 칼로리 소모가 많고 체중 감량이나 근육증가 효과가 좋은 운동만 고집하다간 포기하기 십상이다. 주중에 낼 수 있는 시간, 자신의 체력, 좋아하는 운동의 종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되 무조건 ‘오래’ 할 있는 운동을 선택해야 한다. 혼자 하는 운동보다는 친구나 가족 등과 함께 약속을 정하고 하는 운동이 더 신나고 지속가능하다.
◆ 치료보다는 예방
몸이 심각하게 아프기 전에는 절대로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분이 의외로 많다. 혹시라도 안 좋은 결과가 나올까 봐 무서워 검진을 못 받겠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야말로 대표적인 길티플레저의 예다. 필자가 의과대학에 다니던 30여 년 전에는 국내 암 발생 중 위암이 발생률, 사망률 모두 1위였다.
지금도 여전히 발생률은 1위지만 사망률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값싸고 간편한 국가검진 덕분이다. 이전에는 속이 쓰리다 못해 피를 토하거나 위가 암 덩어리로 막힐 정도가 돼야 겨우 내시경을 받다 보니 진단 시점에 이미 4기인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무증상기에 내시경검사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대다수라 거의 완치가 가능해졌다. 건강을 잃고 나면 운동이나 좋은 음식 모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병원 가기 싫어서, 무서워서, 돈이 아까워서 검진을 미루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40대 중반 이후라면 국가검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년마다 건강보험공단이 제공하는 국가검진을 빠짐없이 받되, 나머지 해에는 역시 2년 주기로 종합검진을 받는 것이 헬시플레저를 실천하는 길이다.
◆ 마음 관리, 명상과 소통
몸 건강과 함께 중요한 것은 마음 관리다. 꼭 필요한 경우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하겠지만, 문턱을 낮추어 요가나 명상, 호흡법, 독서, 음악 듣기 등으로 마음 건강을 챙길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관계가 급속히 차단된 요즈음 혼자서 마음 챙기는 습관 하나쯤은 꼭 마련하고 실천해야 한다. 오프라인 만남이 어렵다면 온라인으로라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회적 소통의 관계망을 잘 유지해야 한다. 코로나 블루를 이겨내고 즐겁게 건강을 지키는 헬시플레저 건강습관, 지금 시작하시라.
글 정유석 단국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제공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광역시지부 건강검진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