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주요 기사

구미시, 왕산허위선생 순국 제116주기 추모행사 거행
구미시, 왕산허위선생 순국 제116주기 추모행사 거행
(사)왕산기념사업회는 21일 왕산 허위 선생 순국 116주기를 맞아 대구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한 내빈과 시민 2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거행했다. 이번 행사는 1부 추계향사, 2부 추모식과 왕산 허위 선생 의병 활동 강연으로 구성됐다. 특히, 허윤 왕산허위선생의 증손께서 선조의 유물 13점을 기탁했으며, 임오동 주민자치위원회와 새마을협의회가 오찬을 준비하는 정성으로 화답했다. 1부 추계향사는 왕산허위선생기념관 '경인사'에서 김장호 구미시장은 초헌관으로, 박교상 구미시의회 의장은 아헌관으로, 김영동 (사)왕산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종헌관으로 각각 참여했으며, 허윤 유족 대표가 첨헌관을 맡았다. 2부 추모식에서는 허윤 증손의 유물 기탁식과 공적 보고, 추모사, 현악 4중주 솔롱고스 콰르텟의 연주와 인칸토 솔리스트 앙상블의 합창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박민영 전(前)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이 '왕산 허위 선생의 의병투쟁'을 주제로 강연해 선생의 업적을 되새겼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왕산 허위 선생의 구국정신과 헌신에 존경을 표하며, 13점의 귀중한 유물을 기탁하신 후손들과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자리를 마련해 준 임오동 주민들께 감사드린다"라며 "선생의 나라 사랑 정신을 되새기며 이를 구미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라고 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2024 세계유산축전-가야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2024 세계유산축전-가야고분군
고령군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등재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3일부터 10월 6일까지 고령 지산동 고분군 및 대가야박물관 일원에서 '2024 세계유산축전-가야고분군'을 개최하고 있다. 28일 한국사 강사 최태성을 초청해 '대가야와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주제로 '고령으로 가얏! 토크콘서트'가 대가야박물관 강당에서 열려, 200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어 10월 3일에는 역사 강사 배기성, 10월 6일에는 방송인 서경석이 강연자로 나서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흥미롭게 풀어낼 예정이다. 이번 세계유산축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고분군 중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열리는 행사로,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인들과 공유하고자 기획되었다. 특히, 지난해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후 처음 열리는 이번 축전은 잊혀진 가야 문명을 재조명하고, 의미를 확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꾸며졌다.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통나무펜션 무료숙박 프로그램과 지산동 고분군을 배경으로 석양과 공연을 즐기며 만찬을 체험할 수 있는 대가야의 향연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이벤트도 마련되어 있다.
김천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이전을 위한 행보!
김천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이전을 위한 행보!
김천시에서는 2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방문해 조계종 총무원장인 진우스님과 국보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이전을 논의했다. 이번 방문은 김충섭 김천시장, 송언석 국회의원, 나영민 김천시의회 의장, 직지사 주지 장명스님, 직지성보박물관장 진웅스님이 그동안 석탑 이전을 위해 시에서 추진한 내용 전달과 더불어 앞으로 조계종의 긴밀한 협조를 요청했다. 김충섭 김천시장은 "김천에서 발굴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원래 있던 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빛을 발휘할 수 있다. 시민들이 염원하는 석탑 이전이 반드시 성사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지난 8월 21일 김충섭 시장과 송언석 국회의원, 나영민 시의회 의장이 함께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나 삼층석탑 김천 이전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이후 9월 3일에는 김천시립박물관에서 종교단체, 학계, 시민단체 등 1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보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김천 이전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10만 명 서명을 목표로 석탑 이전 촉구 범시민 서명 운동을 9월 초부터 펼쳐 현재 5만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와 함께 석탑 이전을 위해 사적지 지정과 기반 시설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등 국보를 맞이할 만반의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화 인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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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인동의 문화재 '모원당'을 찾아서~
구미인동의 문화재 '모원당'을 찾아서~
구미시 인동동행정복지센터 아래쪽에 자리한 ‘모원당’은 도시가 확장되면서 주위에 하나둘씩 아파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곳이다. 넓은 사랑방을 지나 잠시 주방을 엿보니 현대식 주방이 가지런하게 설치되어 있다. 사랑방에 걸린 전등도 그렇지만 주방의 싱크대는 관리인의 깔끔한 성격이 묻어나는 것에서부터 고택에 현대적 시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언제나 닫혀 있었던 대문이 오늘은 보호수 작업을 한다고 활짝 열려 있었다. 기분 좋게 열려있는 대문을 들어서니 반갑게 맞아주시는 관리인 할머니는 자리가 불편하다고 걱정부터 한다. 깊게 우려낸 국화차를 내놓으면서 사랑채에 사람이 없다보니 볼 것도 없다는 말부터 먼저 꺼낸다. 현재 모원당을 관리하고 계시는 할머니는 인근 대구에서 살다가 3년 전 관리하던 사람이 없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대를 이어서 종손들이 관리하고 있지만 혼자 생활해야 하기에 적적한 것은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할머니에게 혼자 생활하시는 것이 외롭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할머니는 “적적하지만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기에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 모원당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있나요? 『여헌집』의 모원당기에 의하면, 모원당은 여헌 장현광 선생(1554∼1637)의 가옥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거처할 곳이 없자, 문인 장경우를 비롯한 문도와 친척들이 1606년에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청천당은 여헌 선생의 자제인 청천당 장응일(1599∼1676)이 건립한 당우로서 학문을 닦고 교유의 장으로 삼았던 곳인데, 1607년에 세워진 것이다. 여헌 묘우는 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효종 1년(1650)에 세운 것이다. 모원당을 세운 여헌 장현광 선생의 역사적 위상은 너무 널리 알려져 있어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선생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본관은 인동, 자는 덕회, 호는 여헌이다. 23세가 되던 1576년(선조 9)에 재능과 행실이 알려져 조정에 천거되어, 주어진 관직에 대해 진퇴를 거듭하다가, 1602년 공조좌랑과 형조좌랑을 역임하였고, 이후에도 많은 벼슬이 주어졌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1624년 사헌부 장령, 사헌부 집의, 공조참판, 1626년 형조참판을 거쳤다. 1636년 12월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의 궐기를 촉구하는 통문을 돌리고 군량미를 모아 보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삼전도에서 인조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입암산에 들어가 반년 후에 죽었다. 여헌 선생은 관료로서보다 일생을 학문과 교육에 바쳤으며, 재야의 산림으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그는 한강 정구에게 수학한 적이 있어 퇴계학파로 분류되지만, 이기론이나 심성론에서는 퇴계 선생의 학설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 모원당을 지키는 또 하나의 존재 「모원당 회화나무 구미 여헌 장현광 종가」라는 제목의 책에 회화나무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무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고 조선조 영남 사림의 거두인 인동출신 남산파 여헌 선생에 대한 내용뿐 이었다. 처음으로 족보를 정리하셨다는 황상파 시조 죽정공에 관한 얘기도 중간에 나온다. 또 선산, 특히 구미 인동이 우리나라 성리학의 큰 줄기 가운데 하나인 사림학통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사림 학통은 이 지역출신 야은 길재와 그의 제자 김숙자, 김종직, 그리고 다시 김광필과 정여창에 이어 유림의 거두 조광조 등으로 이어진다. 죽정공은 스승 정암이 능주로 유배를 가자 함께 따라가서 사사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다 고향으로 돌아와 관직에 대한 생각을 접고 학문에만 정진했다. 죽정일고 등 관련서적을 읽고 또 새로 나온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면 선조들이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평생토록 스스로의 몸가짐을 올곧게 바로 지키며 정진한 투철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인동지역에서의 모원당 인동지역의 인구는 웬만한 군부보다 더 많은 인구를 자랑한다. 인동동과 진미동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지고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되는 도심의 하루를 살아가는 곳이 되어 버렸다. 이제 모원당은 도심의 빠른 변화 속에서 느림을 고집하면서도 조금씩 변화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문중에서 관리하던 일들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관리인들이 바뀌고 바뀌면서 세월을 따라 흐르고 있다. 격동의 세월을 살았던 여헌 장현광 선생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뒤돌아보았으면 한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세월을 거슬러 일제의 수탈을 오롯이 견뎌야했던 그날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은 무엇인지조차도 잊고 살아가고 있지나 않은지 모를 일이다. 그 당시 빨랐다면 열차 말고는 달리 없었을 교통수단이었을 말하지만, 지금은 구미에서 서울조차도 하루 만에 왕복이 가능한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 정말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니면 다른 말로 표현이 어려울 지경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격동의 세월의 한가운대에서 목숨하나 부지하기 어려웠을 당시에 우리 선조들이 자신의 몸을 초개처럼 던져 조국의 독립을 외치고 싸우며 완전한 독립을 이룬 조국의 미래를 꿈꾸고 살았을 그들의 애환과 나라사랑과 애민정신(愛民精神)을 굳이 기억해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한번쯤 기억하고 도심 속에서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모원당을 찾아 먹먹한 가슴을 달래는 시간이라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 에필로그(epilogue) 갑자기 고려말기와 조선 초기를 살았던 야은 길재(吉再)선생의 회고가가 생각이 난다. 「오백년도읍지를 필마로 도라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를 쉽게 우리말로 써보면 “한 마리 말을 타고 고려의 도읍지를 돌아보니 산과 물은 옛 모습 그대로 변한 것이 없는데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구나! 아~태평성대의 세월이 꿈이었단 말인가?”라고 표현이 된다. 모원당의 넓은 사랑에 많은 사람들이 선생을 찾거나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이지만 이제는 찾는 이가 별로 없이 관리인이 자리를 지키는 썰렁한 모습이 되어 버렸는데 만약 선생이 이곳을 찾는다면 길재 선생과 같은 마음이 되지 않을까 한다. 언제까지 문중에서 관리하도록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이 한산한 모원당이 새로운 교육장소가 되고 미래의 동향들이 조국의 미래를 꿈꾸는 공간으로 변모되기를 바라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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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석담 종갓집 설, 음복 도시락과 테이크아웃 식혜 등장
칠곡군, 석담 종갓집 설, 음복 도시락과 테이크아웃 식혜 등장
민족 고유의 명절인 지난 12일 경북 칠곡군의 한 종갓집 사당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한 성인 남성 4명이 거리를 띄우고 차례를 올렸다. 조선 중기 공조참의를 지낸 석담 이윤우 선생의 16대 종손인 이병구 씨 설날 차례 풍경이다. 이 씨 종갓집은 지난해 설날에는 해도 사당 입구까지 사람들로 가득 찼으나 이날은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이 씨는 "보통 설날이면 50여 명이 모였으나 올해는 인근 지역의 아들과 한동네에 사는 친척 등 4명만이 모여서 차례를 올렸다"라며 "코로나 예방을 위해 사전에 전화를 걸어 협조와 양해를 구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차례를 올리는 제관의 숫자만 준 것이 아니다. 차례를 지낸 후 종친들과 사랑방에서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덕담을 주고받는 음복마저도 도시락으로 대체했다. 이날 음복 도시락과 함께 테이크아웃 식혜와 수정과도 선보였다. 각자 집에서 차례를 지낸 후 종갓집 사당으로 참배로 오는 마을 종친들을 위해서다. 참배를 마친 종친들과 인사를 나눈 후 수정과와 식혜가 담긴 컵을 건넸다. 석담 종택 종손 이병구 씨는 "부모의 생명과 자신의 건강을 위한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코로나 시대의 효도다."라며 "모든 국민이 설 명절 연휴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했으면 한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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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역사와 문화재가 공존하는 "천년고찰 대둔사"
불교역사와 문화재가 공존하는 "천년고찰 대둔사"
템플스테이 가능계획 밝혀~ 신라 눌지왕 30년 아도화상이 창건했으나, 고려시대 몽고족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것을 충렬왕의 아들 왕소군이 출가해 다시 세웠다는 구미 대둔사는 우리 선조들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군 1만 명이 주둔시킨 곳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던 치유의 도량으로 알려진 대둔사 대웅전은 2017년 11월 28일 보물 제1945호로 지정된 만큼 지역의 자랑이기도 하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은 지형이 낮은 앞쪽에 석축을 높이 쌓고 가운데 계단을 설치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서 조선시대 전형적인 다포계 건물이다. 대둔사는 보물이 많은 지역의 이름있는 도량이다. 대웅전 주불로 모셔진 아미타 여래좌상은 보물 제16633호로 지정되었다. 아미타 여래좌상은 종이와 삼베를 몇겹씩 발라서 옻칠하고 금박을 입힌 건칠 불상으로서 크기가 1m를 넘는다. 특히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삼장보살도는 영조 16년 영산회상도, 제석도, 현왕도, 아미타불도와 함께 대둔사에 봉안되었던 작품으로서 현재 유일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삼장보살도의 도상은 천장 보살이 중생들을 구제하는 약사여래불처럼 약호(약병)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서, 경북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제작된 기법으로 18세기 새로운 도상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불교의 역사적인 가치가 높다. 대둔사 주지 자성스님은 "신라에서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대둔사가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도량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라며 "대둔사 일원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템플스테이가 가능한 지역의 명소로 만들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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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10주년 기념 문화제 'MEMORY 2010' 후원인 모집
천안함 10주년 기념 문화제 'MEMORY 2010' 후원인 모집
오는 3월 26일 천안함 피격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이 뭉쳐 'MEMORY 2010' 제목으로 문화제를 개최한다. 지난 1월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의 전준영 회장과 함께 천안함 안보견학을 다녀온 후, 일반 시민들은 정부와 시민단체 어디서고 제대로 된 10주년 행사를 계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민들은 이날을 기리기 위해 뜻을 모아 '잊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안보와 역사를 지키고 기억하기 위해, 정부나 정치인들이 해주길 바라는 수동적 의식에서 벗어나 "자유는 스스로가 지킨다."라는 이념 아래 능동적 행동을 하자는 모임이다. '잊사모'에서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기존의 어둡고 딱딱한 추모제 행사 형식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행사가 모토다. '잊사모'는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의미 없는 약속이 아닌 "우리는 잊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도록, 많은 이가 즐길 수 있는 문화제 형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잊사모 관계자는 "천안함을 떠올리면 피격으로 패배의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로 인해 생존 장병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고, 국민은 국가의 위기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천안함의 역사가 패배가 아닌 승리의 기록들임을 알리고, 전사 영웅들과 생존 장병들에 대한 감사함을 전달해 국민에게 대한민국이 여전히 건재함을 알리고 싶다."라고 했다. 문화제 준비를 담당한 'TEAM 작당들'의 최공재 대표는 "당당하게 대중적으로 안보행사를 치르는 '잊사모'의 뜻에 동감하고 '천안함 10주년 문화제'를 통해 안보가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분단국가에서 마주한 우리 생활의 일부분임을 알리고, 천안함이 패배가 아닌 기쁜 승리의 역사였다는 것을 알리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현실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다. 10주년이라는 행사의 무게감과 유명 문화인들의 참여에 걸맞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한데, 일반 시민들이 모인 주최 측의 자금만으로는 자체 조달이 힘든 상태다. 회원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후원인 모금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모금되는 대로 무대제작과 행사 진행비에 1차로 사용되며, 차후에 참여하는 문화인들의 출연료로 사용할 예정이다. 참여하는 문화인들 대부분 사정을 이해하고 흔쾌히 대부분 승낙한 상태다. 잊사모 관계자는 "보내주신 후원금은 사용 내역을 공개하며, 혹시나 후원금이 남는다면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에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후원금 모금은 문화제 진행을 담당한 'TEAM 작당들'의 개별통장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후원문의와 후원인 모집에 대한 문의는 작당들 전화(02-337-2016)나 이메일(zakdangs@gmail.com)로 가능하다.